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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40주 5일 유도분만 출산 후기|약 16시간의 과정, 힘주기 7번 만에 만난 2.54kg 아기일상/출산 기록 2026. 7. 30. 21:58반응형
미루고 미루었던 출산 기록을 이제야 정리해본다.
출산 직후에는 그날의 일을 잊지 않으려고 시간대별로 꽤 자세하게 기록해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기억이 선명한 부분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진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분명하게 기억하는 사실이 있다.
오전 8시쯤 촉진제 투여를 시작했고, 아기가 태어난 시간은 밤 11시 47분이었다.
촉진제 투여부터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약 15시간 47분. 거의 16시간이 걸린 셈이다.
다만 실제로 분만실에 들어가 힘을 준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일곱 번 정도 힘을 줬고, 약 15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그래서 내 출산 시간을 하나로만 표현하기는 조금 어렵다.
유도분만 전체 과정은 약 16시간.
실제 힘주기는 약 15분.그리고 내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실제로 분만실에서 힘을 줬던 15분이 아니었다.
진진통이 강해지던 시간, 무통주사를 맞기 직전의 진통, 그리고 몸에서는 이미 힘을 주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 아직 힘을 주면 안 된다고 해서 억지로 참아야 했던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출산 예정일이 지나도록 조용했던 아기
내 출산 예정일은 2025년 10월 8일이었다.
막달이 되면 오늘일까, 내일일까 하며 진통을 기다리게 된다는데 예정일이 되어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배가 뭉치는 느낌이 어쩌다 한 번씩 있기는 했지만 규칙적이지 않았다. 이게 가진통인지 단순한 배뭉침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진통이 시작되는 느낌은 어떤지, 이슬은 어떻게 보이는지, 양수가 터지면 바로 알 수 있는지 검색하며 기다렸지만 날짜만 계속 흘렀다.
예정일이 마지막 검진날이었는데 양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진통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싶었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10월 13일이 미룰 수 없는 데드라인이라고 하셨고, 이때까지 출산 소식이 없으면 유도분만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임신 40주 5일차 태어날때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유도분만 당일, 새벽부터 시작된 긴장
유도분만 당일 새벽에는 더욱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면서 혹시 자연진통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계속 신경을 썼다.
배가 조금만 불편해도
‘이게 진통인가?’
싶어 긴장했고, 다시 잠들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곤 했다.
유도분만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병원에 가기 전에 자연스럽게 진통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기대와 긴장이 함께 있었다.
오전 6시 50분쯤, 갑자기 새빨간 피가 보였다
아침 6시 50분쯤 화장실에 갔는데 새빨간 피가 나왔다.
그리고 배도 생리통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출산을 앞두고 이슬이 비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이슬은 점액이 섞인 분홍빛 피였다.
그런데 너무나 선명한 피여서 걱정이 됐다.
혹시 조기태반박리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분만실에서는 원래 아침 8시까지 오라고 했지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한 뒤 조금 더 일찍 출발했다.
그렇게 오전 7시 30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검사 결과, 출혈은 이슬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 코로나 검사를 하고 분만실에 입실했다.
의료진에게 출혈에 관해 이야기했고 상태를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본 피는 문제가 되는 출혈이 아니라 이슬이었다.
나는 이슬이라면 점액이 섞인 분홍빛 피만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맹장염처럼 쥐어짜듯 아프지 않고, 초음파 검사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생리처럼 피가 보이는 것도 이슬일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조기태반박리를 걱정하며 병원에 일찍 왔지만, 다행히 아기와 태반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오전 8시, 촉진제 투여 시작
환복하고 태동과 자궁수축을 확인하는 장치를 부착했으며, 수액을 연결하고 필요한 처치를 받았다.
그리고 오전 8시쯤 촉진제 투여가 시작됐다.
촉진제를 맞는다고 바로 견디기 어려운 진통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배가 조금씩 단단하게 뭉치고 생리통처럼 묵직한 느낌이 오는 정도였다. 통증이 왔다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대화도 할 수 있었고 휴대폰을 볼 여유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할 만한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촉진제가 계속 들어가고 진통 간격이 짧아지면서 통증도 점점 강해졌다. 처음에는 견딜 만했던 통증이 어느 순간부터는 진통이 올 때마다 대화를 멈추고 호흡에만 집중해야 할 정도로 변해갔다.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없어서 더 힘들었던 기다림
유도분만을 시작하면 몇 시간 안에 빠르게 아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궁문이 열리고 아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내진을 통해 진행 상태를 확인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마음도 조급해졌다.
‘오늘 안에는 낳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 고생했는데 결국 수술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촉진제는 계속 들어가고 통증은 점점 강해지는데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었다.
유도분만은 통증도 힘들었지만,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상태로 계속 기다리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진통 못지않게 중요했던 배고픔
내 출산 기록에서 배고픔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유도분만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고, 상황에 따라 수술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촉진제를 맞고 밤늦게까지 출산 과정이 이어졌으니 당연히 배가 고팠다. 병실에 있는 TV를 보다가 먹는 것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보고는 했다.

출산 전, 열심히 걷는 중 진통이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전에는 통증보다 배고픔이 더 신경 쓰일 때도 있었다. 배고픔도 잊고 통증도 잊기 위해 복도를 열심히 걸었다.
나는 임신 후반기에 임당까지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무엇을 먹으면 혈당이 오르는지 신경 써야 했고, 식사 순서도 고민했다. 식사를 마치면 혈당을 낮추기 위해 매번 걷거나 운동해야 했다.
그래서 임신 기간 내내 출산만 하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산 당일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진통을 견뎌야 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배고픔은 점점 절박해졌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다.
‘오늘은 무조건 낳는다.’
오늘 아기를 낳지 못하면 다음 날까지 계속 먹지 못할 수도 있었다. 유도분만이 실패하거나 수술로 이어지면 언제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진통이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안에는 반드시 출산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물론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늘은 꼭 낳고 뭐라도 먹어야 한다.’
는 집념도 나를 끝까지 버티게 한 큰 원동력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 진지하고 간절했다.
오후가 되면서 강해진 진통
시간이 지나면서 진통은 점점 강해졌다.
처음에는 생리통처럼 묵직한 느낌이었다면, 오후가 되자 진통이 오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워졌다.
통증이 시작되면 몸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허리와 골반 쪽까지 아픈 느낌이 이어졌다.
오전에는 걸으면서 참을 수 있었는데, 도저히 참기가 힘들어졌다.
TV 화면도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통주사를 맞기 전의 진통
오전에 참기 힘들면 자궁 열린 것이 4센치이상이 아니어도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하셨었는데, 무통주사를 맞기 전까지 엄청 고민을 했다. 아 그래도 좀 참을만한데, 싶다가도 아니 이거를 참아야 하는 건가 하는 왔다갔다하는 마음. 지금 얘기할까 말까. 그러다 오후 5시즈음 결국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무통주사를 원한다고 해서 그 순간 바로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취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진통은 계속됐다.
나는 이때의 진통이 출산 과정 중에서도 특히 힘들게 기억에 남는다.
이미 통증은 참기 어려울 만큼 강해졌는데 언제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말하기도 어려웠고 호흡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출산 과정에서 가장 아팠던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무통주사를 맞기 직전의 진통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무통주사 카테터 삽입에 30분이 걸렸다
무통주사를 맞기 위한 카테터 삽입은 보통 10분 정도 걸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척추뼈가 촘촘한 편이었고, 카테터가 들어갈 공간도 좁은 데다 큰 혈관까지 길을 막고 있어 한 번에 삽입되지 않았다.
결국 한 차례 시도한 뒤 다시 위치를 잡아 국소마취를 한 번 더 맞았고, 카테터 삽입이 완료되기까지 총 30분 정도가 걸렸다.
당시에는 배가 너무 아파서 등을 둥글게 말아 자세를 잡는 것도, 국소마취 주사를 맞는 것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통주사를 맞기 전 항생제 주사를 맞을 때의 통증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무통주사 준비가 끝났고, 무통주사의 약이 돌자, 왜 다들 무통주사를 ‘무통천국’이라고 부르는지 바로 알게 됐다.
무통주사를 맞기 전까지는 진통이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느낌이었고, 걸어 다녀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몸이 떨릴 정도로 배가 아팠는데, 무통주사가 들어가고 나서는 그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몇 시간 동안 통증 때문에 긴장하고 있던 몸이 잠시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 좀 살겠다.’
싶었다.
출산 진행을 위해 양수를 터뜨렸다
오후에 내진을 한 번 하시더니 진행이 잘 되고 있다면서 출산 진행을 돕기 위해 의료진이 인공적으로 양막을 터뜨렸다.
자연스럽게 양수가 터진 것이 아니라 처치를 통해 양수를 터뜨린 것이었다.
양막을 터뜨리고 나니 따뜻한 물이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이제 정말 출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촉진제를 맞고 기다릴 때는 출산이 언제 진행될지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양수를 터뜨리고 나니 아기를 만나는 과정이 한 단계 더 진행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바로 아기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자궁문이 더 열리고 아기가 충분히 내려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인공파막 이후에는 진통과 아래쪽 압박감이 엄청 막 아픈 건 아니었지만 무통주사의 효과를 뚫고 느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에서는 힘을 주라고 하는데 참아야 했다
내게 출산 과정 중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실제로 힘을 줄 때가 아니었다.
밤 9시즈음부터 몸이 저절로 힘을 주려고 했다.
단순히 배가 아픈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무통때문에 배가 아픈 건 아닌데, 아래쪽으로 힘이 자동적으로 들어가서 식은땀이 났다. 내진으로는 7~8cm가 열렸는데 좀 더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려야 했다.
온몸에서,
‘지금 당장 밀어내야 한다.’
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진통이 올 때마다 아래로 힘이 쏠렸고 본능적으로 힘을 주고 싶었다.
밤 10시 30분즈음 도저히 못 참겠어서 남편에게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달라 얘기하고, 나는 변기에 앉아서 막 힘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 상황을 보시더니 함부로 힘을 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내진을 하시더니 분만실로 가기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몸은 이미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데, 머리로 그 힘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그 시간이 정말 괴로웠다.
힘이 들어가려는 순간마다 호흡으로 참아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도 힘을 주지 말고 호흡하라고 했지만 진통이 강해질수록 몸의 반응을 억누르는 게 쉽지 않았다.
차라리 마음껏 힘을 주라고 하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미 긴 공복으로 체력도 떨어진 상태였고 진통은 계속 강해졌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오늘 반드시 낳는다.’
내게는 실제 힘주기 15분보다 이렇게 힘을 주지 않으려고 참았던 시간이 훨씬 더 힘들었다.
밤 11시가 넘어 시작된 분만 준비
밤 11시 무렵이 되자 의료진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아기가 많이 내려왔고 출산이 가까워졌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분만실에서 분만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몸은 계속 힘을 주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아직은 마음대로 힘을 줄 수 없었다.
그 시간을 버티고 나서야 드디어 힘을 줘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드디어 마음껏 힘을 줘도 된다는 말
11시 30분 즈음, 간호사 선생님이 진통이 올 때 맞춰 힘을 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힘을 참지 않아도 됐다.
진통이 시작되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간호사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온몸의 힘을 아래쪽으로 모았다.
임신 막달부터 호흡법을 공부했었고, 또 어떤 사람의 출산 후기에서 3번인가 4번만에 힘을 줘서 낳았다는 말에 나도 그렇게 힘줘서 꼭 낳고야 말겠어 라는 결심으로 힘을 냈다.
남편도 옆에서 내 몸을 잡아주면서 호흡법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한 번 힘을 주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 진통이 오면 다시 힘을 줬다.
총 7번, 약 15분간의 힘주기
그렇게 총 7번의 힘을 줬다.
4번의 힘주기로 안 나왔을 때에는, 실망감이 들면서 힘이 좀 빠질 뻔했지만 분만실 안에 있는 시계를 보며 12시 전까지는 꼭 낳을거야라는 다짐을 하며 힘줄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생각으로 힘을 주었고, 그렇게 7번의 힘을 주게 된 것이다.
실제로 힘주기를 시작한 뒤 아기가 태어나기까지는 약 15분 정도였다.
촉진제를 맞고 기다린 시간, 진통을 견딘 시간, 힘주기를 참아야 했던 시간에 비하면 마지막 과정은 빠르게 진행됐다.
오히려 힘을 참아야 했던 때보다 마음껏 힘을 줄 수 있게 된 순간이 더 낫게 느껴졌다.
밤 11시 47분, 2.54kg 여자아기 출산
그렇게 7번 정도 힘을 준 뒤 아기가 태어났다.
시간은 밤 11시 47분.
임신 40주 5일.
2.54kg의 여자아기였다.
아기가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의 느낌은 지금도 정확히 생각난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에서는 수박이나 참외 같이 둥근 딱딱한 과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고, 그래서 아주 개운해진다고 하는데, 전혀. 무언가 수욱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은 났었지만 개운한 것은 없었다. 계속 몸에 힘이 들어가려고 했던 감각만 남아있었다.
23시 47분 탄생을 알리는 의사선생님의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몸 위에 아기가 놓여졌다. 두눈을 꼭 뜨고 나를 쳐다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기는 날때부터 눈을 떴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임을 날때부터 알 수 있던 사항이었다.
내 몸에 올려진 아기가 너무 조그맣다는 생각을 했고, 아기에게 한 나의 첫마디는 "튼튼아 고생했어"였다.
그 후에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고 했는데, 기진맥진해져있던 나는 그 부분만 전혀 기억이 없다.
약 16시간의 유도분만
시간을 다시 계산하면 이렇다.
오전 8시쯤 촉진제 투여를 시작했고, 밤 11시 47분에 아기가 태어났다.
촉진제 투여부터 출산까지 약 15시간 47분.
거의 16시간이었다.
출산 직후 남겨둔 기록에는 출산 시간이 6시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지금 다시 계산해보니 촉진제 투여 시점부터 계산한 시간은 아니었다.
아마 본격적으로 진통이 강해진 시점부터 계산했거나 정신없는 상태에서 대략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내 출산을 정확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유도분만 전체 과정은 약 16시간.
실제 분만실에서 힘을 준 시간은 약 15분.
총 7번 정도 힘을 주고 아기를 낳았다.
회음부 통증은 거의 없었다
출산 전에는 회음부 절개와 출산 후 통증도 걱정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회음부를 아주 조금만 절개했고, 회음부 탄력도 좋은 편이라고 하셨다.
덕분에 회음부 통증은 거의 없었다.
출산 당일에는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날 이후 회음부 통증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출산 후기를 보면 회음부 통증으로 오랫동안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이 부분은 다행이었다.
오히려 힘들었던 것은 훗배앓이
회음부 통증 대신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훗배앓이였다.
아기를 낳은 뒤 자궁이 수축하면서 배가 조이듯 아팠다.
이미 유도분만과 출산으로 몸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훗배앓이 통증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배를 계속 마사지했다.
얼마나 열심히, 또 세게 마사지했는지 나중에는 배에 멍까지 들었다.
훗배앓이 때문에 아픈 배를 낫게 해보겠다고 마사지하다가 오히려 멍까지 만든 셈이었다.
다행히 훗배앓이는 하루 정도 지나면서 많이 괜찮아졌다.
내 경우에는 출산 후 회음부 통증보다 이 하루 동안의 훗배앓이가 훨씬 더 힘들고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출산이 끝나자 머릿속은 온통 음식 생각뿐이었다
힘을 줄 때만큼은 아기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 신생아실로 이동한 뒤부터는 머릿속이 온통 음식 생각으로 가득 찼다.
수액을 맞고 있어서 허기가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금식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신적인 배고픔이 꽤 컸다.
후처치가 끝난 뒤 자정 30분쯤 입원실로 이동했다. 병실에 도착하니 음식과 입퇴원 안내문을 가져다주셨는데, 내 눈에는 안내문보다 음식만 보였다.

가연관악산부인과 분만직후 식사 결국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분만 후 4시간 안에 소변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새벽 2시 30분쯤 소변을 본 뒤 무통주사 카테터도 제거했다.
그 뒤에는 훗배앓이가 올 때마다 자궁 마사지를 하며 버텼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5시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른 출산 후기를 보면 아기가 나오자마자 몸이 시원해지고 통증이 사라졌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아래 쪽 통증은 태반이 빠져나갈 때까지 이어졌고, 자궁이 수축하면서 생기는 훗배앓이는 다음 날 아침 식사 전까지 계속됐다.
조금 더 기다렸으면 자연진통이 왔을까
유도분만 당일 이슬이 비쳤던 것을 생각하면 가끔 궁금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그날이나 다음 날 자연진통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촉진제를 맞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출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기다려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예정일을 이미 넘긴 상태였고, 마지막 검진에서는 양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괜히 10월 13일을 기다릴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슬이 비쳤다고 해도 실제 진통이 언제 시작될지는 알 수 없었다. 자연진통이 올 가능성만 기다리다가 아기에게 필요한 양수가 더 줄어드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유도분만은 잘 진행됐고, 제왕절개로 전환하지 않은 채 아기를 건강하게 만났다.
그래서 지금의 결론은 이렇다.
조금 더 기다렸다면 자연진통이 왔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예정대로 유도분만을 진행해서 다행이었다.
당일 이슬이 비쳤다는 것은 어쩌면 내 몸도 이미 출산할 준비를 시작했다는 의미였을지 모른다.
그 상태에서 촉진제와 인공파막의 도움을 받아 그날 무사히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당시의 선택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유도분만 출산을 돌아보며
오전 8시부터 밤 11시 47분까지.
약 16시간 동안 촉진제를 맞고, 기다리고, 진통을 견디고, 힘을 주고 싶은 몸을 억지로 참았다.
실제로 분만실에서 힘을 준 시간은 약 15분.
총 7번 정도 힘을 주고 2.54kg의 여자아기를 만났다.
출산 전에는 아기가 실제로 나오는 순간이 가장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무통주사를 맞기 직전의 진통과 몸에서 이미 힘을 주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며 그 힘을 참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반대로 막상 힘을 줘도 된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참지 않고 온몸의 힘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진통 못지않게 절박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임당 때문에 임신 후기 내내 먹는 것을 조절했고, 출산 당일에는 온종일 공복으로 버텨야 했다.
그래서 아기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오늘은 반드시 낳고 먹는다.’
는 일념으로 끝까지 버텼다.
출산 후 회음부 통증은 거의 없었지만 훗배앓이는 하루 동안 꽤 힘들었다. 통증을 줄여보겠다고 배를 마사지하다가 멍까지 들었다.
유도분만 당일 이슬이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기다려볼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남아 있다.
하지만 양수가 줄고 있던 상황에서 의사 선생님이 정해준 마지노선을 따르길 잘했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리고, 아파하고, 참고, 힘을 준 끝에 우리 아기를 무사히 만났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리 둘의 생활은 정말로 셋의 생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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